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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지식과 상식을 담은 세책본 <고남당전>카테고리 없음 2019. 11. 9. 13:35
고소설 <고담낭전>은 미천한 신분의 소년 ‘담낭(談囊)’이, 어른이자 고을의 수령인 ‘태수(太守)’와 만나 ‘지혜 겨루기’ 문답(問答)을 나누고, 문답 내기 끝에 마친내 소년이 승리한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이본에 따라서 이후에 큰 상이나 관직을 받거나 태수의 딸과 혼인하는 내용이 더 기재된 것도 있다.
고소설에서 이처럼 어른과 어린이의 대결, 어린이의 승리로 끝나는 작품은 <공부자동자문답(公夫子童子問答)>가 있다. 두 작품은 고소설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작품으로 평가을 받아 그동안 이 작품의 형성 과정, 구조와 의미, 문체적 특징 등을 구명(究明)하는 노력들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속시원히 이 작품의 형성을 해결해줄 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이 소설이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책을 빌려주는 세책본(貰冊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현재 중구 산림동에서 영업했던 세책점의 대본(貸本)으로,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을미(1895년) '산림동' 세책점에서 사람들에게 대여해주던 것이다.
이 작품은 '고소설'이라고 하기엔 정말 재미없는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가 왜 성인인지, 역대 제왕은 누구며, 효자, 충신, 문장가, 의술가, 잡술가, 명필가, 미녀 등은 누구인지, 그리고 하늘과 땅의 크기, 바다의 깊이는 얼마인지, 마지막으로 인간은 왜 태어나고 죽는지, 자식은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 등을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답을 쭉 정리해 놓고 있다.
그러나 가만히 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소설에서 주고받는 내용은 사실상 이 세상 사람들, 특히 '지식인'이나 '교양인'으로 자처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할 핵심 지식이자 상식이다.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꼭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사실 자세히 알기는 귀찮은 것... 이런 것들을 바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소설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바로 당시 책을 통해서 '돈'을 벌려는 '세책업자'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