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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전문출판사의 위기: 민속원의 빈 방에서 홍기원 회장을 추모하며
    카테고리 없음 2019. 2. 3. 20:07

    민속원은 우리나라 민속학(民俗學) 분야에서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하는 학술 전문 출판사이다 

     

     

     

    민속원 출판사의 모습

     

    필자는 2010년 학회 일로 이곳을 처음 갔었다. 학술지 문제로 홍종화 사장과 한참 이야기하던 중에, 노장(老壯) 한 분께서 나를 쓱 쳐다보며 전공을 묻고 나갔다. 그리고 곧 책 선물을 주셨는데, 혜경궁의 읍혈록이었다. 책을 받고나서야 그 분이 그 유명한 민속원 설립자인 홍기원 회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때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그런 고마운 기억을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20191월에 사부(師傅) 오 선생님과 민속원을 방문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홍기원 회장님이 최근에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홍기원 회장이 쓰시던 방을 구경했다. 홍종화 사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방을 치우지 못하고 예전 모습 그대로 방을 보존하고 있었다. 방은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홍기원 회장이 들어올 것 같은 홍 회장 생전의 상태였다.

     

     

     

    책장에 꽂힌 책 하나하나를 보면서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해 상당히 많은 책을 수집했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민속원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저력과 밑천에서, 중요한 책들을 간행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홍기원 회장은 마지막으로 "절대 출판사를 문 닫게 해서는 안 된다. 천 벌을 받는다"는 유언을 남기고 가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나는 걱정이 들었다. 그나마 전문 전공서적의 독자였던 대학생들은 이제는 더 이상 책을 안 사고, 그런 출판사는 별 다른 수입 없이 계속해서 수익성 없는 책들만 찍어내는 현실에서, 과연 이런 전문 학술 출판사가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현재 국문학 관련 학술 출판사는 대략 10곳만 우리나라에 남았다.

    이제 이런 학술 전문 출판사마저 없어지면 한국의 인문학은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최근 성균관대 앞에 영업하던 사회과학 서점이 문을 닫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그것도 큰 문제지만 이제 우리가 고민할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 모두 학술 전문 출판사들의 생존과 존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 하는 대책 세우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절대로 출판사를 관두지 말라. 천 벌을 받는다는 유언을 남긴 홍기원 회장의 유언, 그런 유언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나가겟다고 일하는 출판사의 직원들, 이런 고귀한 정신과 생각을 민속원의 빈 방, 고 홍기원 회장의 방에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홍기원 회장의 명복을 빌며, 저 세상에서도 원하는 좋은 책을 만드시기를 마음 속으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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